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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도암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설' 제1강-1부

도암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설 (2016년 제1회 정종사 불교대학)

 

강의자료 : 보현행원품 강설 (혜남 저, 부다가야 출판)

 

강의일자 : 2016.1.7(목) 13:00~15:00

 

강      설 : 무문 도암스님

 

불교대학 : 양산 덕계 소재 '정종사' (주지 : 여해스님)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할 내용이 경전이 보현행원품이라는 거죠. (네)

 

이 보현행원품앞에는 어떤 말이 붙느냐 하면, 경전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안에

 

우리가 관세음보살보문품 그러면 어느 경전에 있어요? 법화경 안에. 법화경 안의 일부분이 관세음보살부문품. 화엄경중에서 이 보현행원품은 어떻게 되냐 하면,

 

자 인도에서 중국까지 올려면은 한 몇 km쯤 될까요? km 수로는 제법 많이 되죠.

 

짚차를 타고서 중국에서 인도까지 짚차를 타고 간다고 그래도 고생이 보통이 아니라고 그래요. 짚차에다 물싣고 음식싣고 가는데도 고생한데요.

 

자 그럼 그때는 어떻게 했느냐. 자. 이제 화엄경이 인도에서 낙타에도 싣고 조랑말에도 싣고 이렇게 해가지고 사막을 건너서 산도넘고 강도 건너고 해서 쭈욱 중국으로 옵니다. 오다보면은 어떻게 될까요.

 

이게 경전을 쭈욱

 

경전이 뭐냐하면, 나뭇잎새인데, 패엽이라고 하는 나무 잎새가 있는데, 그 잎새 위에다가, 이걸 이렇게 잘 다듬으면 판판한 모양이 나오거던요. 종이 비슷하게, 그 위에다가 글자를 썼어요. 그래가지고 그위에다가 구멍을 뚫어서 흩어지지 않게 묶었거던,

 

양이 많을까 적을까요. 양이 많죠. 지금 책보다 훨씬 양이 많죠.

 

그것을 낙타에다 싣고 어디에다 싣고 오는데 오다가 낙타가 한 마리 쓰러지면 어떻게 하죠?

 

오다가 낙타가 한마리 죽고, 쓰러지고 조랑말 한 마리 쓰러지면 이제 포기할 걸 포기해야 되요.

 

그렇죠.

 

그것을 나눠 싣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아니 그만큼 싣고 오다가 쓰러졌는데 옆에다가 더 실을수가 없죠.

 

그러다 보니까 인도에서 가지고 오는 경전 중에서 중간 중간에 포기하는게 나타나요. 부득이하게 그러죠.

 

화엄경이 10만 게송을 가지고 시작했거던, 출발했거던요. 근데, 처음에 이렇게 10만 게송을 가지고 출발해서 도착하니까 얼마가 남았느냐 하면은 3만6천인가, 3만..이정도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10분의 6이상이 날아갔어요. 그래서 이것을 번역하니까 60 화엄경이 되었어. 60권이 나와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많이 없어졌는데도 남은 내용만 읽어봐도 너무너무 좋아.

 

그런데 아쉬움이 있을까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시도를 하잖아요. 또 가지고 와. 그런데 가지고 왔는데 4만5천 게송 정도가 또 왔어요. 그걸 번역을 했거던. 해보니까 80권이 나와.

 

그래도 역시 절반이상이 또 빠진거예요. 그 다음에 인제 그이후에..

 

앞에 화엄경에서 쓰윽 가면은 맨 끝에 입법게품이 있거던, 입법게품이라고 하는 부분이 양이 많아요. 그런데 80권 중에서 60~80권까지가 입법게품이예요. 총 21권.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어떤일이 있냐 하면은 입법게품만 40권이 되는 경전이 왔어요.

 

그래서,

 

그러니까 21권보다 40권이 훨씬 좋죠. 40권을 번역해 보니까. 60권 본에도 없고 80권본에도 없었던 내용이 39권, 39 말고 40권 째에

 

40권째에 들어 있는 내용이 이 보현행원품이에요. 읽어보니까 너무너무 좋은거라.

 

그래서 요 한권만 따로 빼서 책을 요렇게 해가지고 새로 단독으로 경전으로 해서 유통을 시켰거던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느냐. 왜 이 한권이 한권만 따로 뺐느냐 하는 내용을 한번 볼게요.

 

경전을 어디를 보냐 하면 41쪽을 봅니다. 자 이제 41쪽을 보면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경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당부말씀)

자, 이제 부처님 이렇게 법문을 들을때 제일 중요한게 뭐예요?

 

우리가 이 경전을 공부할때 핵심이 뭐냐하면 한시간 강의를 듣고 두시간 강의를 듣고

 

법문을 듣던 강의를 듣던 듣고나서 이게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가늠점이 뭐냐하면

 

내가 안고 있었던 괴로움의 양이 줄었느냐

 

그리고 내가 꿈꾸던 행복의 방향으로 한발 나아갈수 있느냐

 

나는 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발견해서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느냐

 

나는 조금더 지혜로워질 수 있느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강의를 들으면 이 효과가 나와야 되요.

 

하루를 들으면 하루만치 이틀을 들으면 이틀만치, 열번을 들으면 열번 만치..

 

진보가 있어야 되요. 여러분 알겠죠.

 

오늘 두시간 같이 경전을 읽어보고 그런 것을 나한테서 발견할 수 없다 그러면 뭐죠

 

여기에 제가 부처님 경전을 잘못 강의 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죠.

 

 

(본문 강의)

자, 이제 처음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여래(부처님)의 수승한 공덕을 칭찬하여 마치시고 모든 보살들과 선재동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여래 如來의 공덕은 가사 시방일체 모든 부처님이 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이 지나도록 상속 相續하여 연설하더라도 다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 공덕문 功德門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응당 열 가지 넓고도 큰 행원 行願을 닦아야 하느니라."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41쪽이죠.

 

"여래의 수승한 공덕을 칭찬하여 마치시고”

 

여기에서 여래의 수승한 공덕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 40권분에는 39권째 경전에 여래의 공덕을 보현보살이 게송으로 말씀하세요.

 

384구, 7글자로 384구를 말씀하시거던요.

 

자 그런데 80권에서는 어디에? 80권째에

 

60권 분에는 어디에? 60권째에. 그 내용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60권째에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는 데까지 나오고 그 다음에 뭐죠? 보현행원품이 여기 60권에도 없고 여기 80권에도 없는데 여기40권에는 있는 거예요.

 

"여래의 공덕을 칭찬하여 마치시고 모든 보살들과 선재동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여래의 공덕은 가사 시방일체 모든 부처님이 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이 지나도록 상속해서 쉬지않고 연설하더라도 다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 공덕문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응당 열 가지 넓고도 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그런데 여기에서 여래의 공덕을 쭈욱 설명하는 화엄경이 60권에도 쭈욱 설명해 왔고 80권에도 쭈욱 설명해왔는데 이 앞에 설명한 내용들을 완전하게 성취하려고 하면은

 

뒤에 마지막권 여기에서 제시하는 열가지 행원을, 이것을 잘 닦아야한다. 그러니까 뭐예요.

 

이것을 잘 닦으면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먹을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요.

 

여기가 엑기스네, 마지막 것이 엑기스네 그죠. 중요해요 안해요. 따로 이것만 빼서 돌려보고 싶은 생각이 날까, 안날까요.

 

자, 이렇게 해서

 

그러면 여래의 공덕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

 

42쪽을 보죠. 384구를 쭈욱 이야기 하는데, 그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게송이 지금 42쪽에 있는 게송이에요. 거기에 보면

 

“세계 티끌마음 헤아려 알고 큰바다 속의 물 다 마시고 허공을 헤아리고 바람을 꿰매더라도 부처님 공덕 다 설할 수 없으리”

 

"세계 티끌마음" 이렇게 말하면 뭔소린지 모르겠죠.

 

자 이제 우리가 부처님 세계를 한번 보면 우리가 조선시대 때까지만해도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 배를 타고 쭉 나가다보면은 벼랑이 나와서 여기 떨어지면 죽는다. 조심해라. 멀리가지마라. 이런게 있어요. 없어요?

 

실제로 배타고 나갔다가 풍랑 맞아서 못 돌아와도 여기에 쏙 빠졌다고 생각했었거던,

 

그러던 시절이 있죠.

 

그런데, 이 부처님이 부처님 경전에서 보면 뭐라고 하느냐하면

상방으로 하방으로 동방으로 서방으로 위로 아래로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세상이 전부다 나가면은 빠진다고,

 

콜롬버스가 왜 대단하냐하면 멀리가면 떨어질건데 떨어져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항해를 했어요. 그렇죠.

 

그때도 콜롬버스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거지요.

 

그런데 부처님 경전은 언제예요. 콜롬버스보다 빨라도 너무 빠르죠.

 

인도에서 경전을 가져와서 번역된 시기가 콜롬버스보다 굉장히 빨라요.

 

그런데 거기에서 우주에 전후좌우 상하로 무한히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은 뭐예요.

 

요즘 천체물리학하고 맞아요. 틀려요? (맞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불법을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어떤 내용들이 나오느냐하면은

 

불법은 경전은 이미 내용이 고정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옛날에 부처님이 설해주신거니까.

 

그런데 그내용이 그건 그대론데, 100년전에 불법하고 과학하고의 거리를 보면 어느 정도가 있어요.

 

그런데 50년전의 불교하고 과학하고의 거리를 재보면 거리가 있는데 훨씬 가까워,

 

그리고 30년전의 거리를 재보면 불교하고 과학의 거리가 더 가까워,

 

30년전보다 20년전의 거리는 더 가까워,

 

10년전의 과학이 더 가깝고 현대과학이 훨씬 더 가까워져.

 

자 그러면, 불교가 과학적이다가 아니라

 

과학이 불교에, 부처님 설법에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부처님 세계, 부처님이 뭐라고 하셨냐하면,

 

우리 현대과학에서 얻어진 정보를 가지고 그래픽을 만들어서 보여준게 뭐냐하면, ‘파워오브텐(Powers Of Ten)’인가 동영상이 있어요. 유튜브에 찾아보면 있어요.

 

천체 물리학의 세계와 미립자에 관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이것을 확대하고 축소하면서 세계를 들여다 보는데,

 

이 미립자의 세계와 천체물리학의 구조가 거의 똑같다는 이야기예요. 작은세계나 큰세계나 이 시스템은 동일하다.

 

그런 이야기의 흔적이 화엄경에는 무수하게 나와요.

 

일미진 속에 하나의 미진속에 하나의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다.

 

뭐 이런 이야기 라던지, 자 그런데 그것을 망원경으로 본것도 아니고 현미경으로 본것도 아니고 어떻게 봤다고요. 부처님이 어떻게? 삼매속에서, 삼매를 통해서 지혜가 열린다 이런 말을 하는데,

 

여기서 이 티끌세계라는 건 무엇을 얘기하냐 하면은,

 

세계 티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우주가 펼치면 은하가 있죠? 은하계.

 

하나의 은하계안에는 블랙홀이 있고 블랙홀을 중심으로 해서 은하계가 돌고 있거던, 그정도가 뭐냐하면 하나의 불찰이다. 요렇게 보면 되요.

 

요거를 가루를 내. 몽땅 가루를 내서 숫자를 세면은 숫자가 많을까 적을까요? (많아요)

 

은하계를 전체를 톱으로 갈아서 그 숫자를 세어보면 그때 셌던 숫자가 찰진

 

그만큼 숫자만큼의 중생의 마음,

 

그 마음을 우리가 옆에 사람 마음을 다 이렇게 들여다 보고 이해해요 안해요? 같이 사는 사람 마음도 매일 봐도 대화를 나누는데도 그마음이 왜그렇게 안보이는지 몰라.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숫자에 은하를 톱으로 갈아서 나온 숫자만큼의 중생의 마음을 다 이렇게 세서 알수 있고 그런 능력이 있더라도,

 

또 큰바다의 물을 마실수 있는 역량이 있더라도

 

또 허공이 동서남북으로 쭉, 위아래로 펴진 허공을 다 셀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또 거기에다가 이 바람, 바람을 잡을수 있어요 없어요. 근데 이 바람을 마음대로 묶어놓을수 있는 신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정도의 신통방대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을 다 설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공덕은 한계가 있다 없다? (없어요) 한계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부처님의 공덕을 설하는 맨 마지막 게송이예요.

 

죽 설하다가 뭐예요. 여태까지는 약식으로 설명했고

 

자세히 설명하려면 끝이 없으니까 여기서 일단 마치겠습니다. 이소리지. 이 게송이

 

그리고서 그 앞에 설한 부처님의 공덕을 우리가 어떻게 성취할 거냐 하면은 그 방법이 그 뒤에서부터 나와요.

 

그런데 그 부처님의 공덕이 그럼 왜 중요하냐 그러면 부처님이

 

부처님의 공덕은 우리한테는 뭐죠. 부처님의 공덕은 부처님의 역량으로 드러나는데. 우리는 불성으로,

 

우리한테는 불성으로 이렇게 부처님 성품이 우리 안에 있기는 해

 

우리가 각자 가지고는 있어. 그런데 사용능력이 몇퍼센트?

 

0.01퍼센트. 0.02, 0.03, 누구는 1퍼센트 2퍼센트 이렇거던.

 

그러면 어떻게 되요. 0.001퍼센트 이렇게 쓰고 있으면 흔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게 잘 안드러나요 그죠.

 

근데 이것을 우리가 동등하게 가지고 있고 내가 볼 때 굉장히 훌륭한 사람,

 

같이 살면서 굉장히 훌륭한 사람 얼마나 발견해요? 굉장히 훌륭한 사람. (ㅎㅎㅎ)

 

그 굉장히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은

 

기본능력은 동일한데, 이게 안드러나요. 쉽게 안드러나요. 그런데 이것을 쉽게 드러나게 하는 방법,

 

이런게 있다면은 그것도 다른사람의 것이 아닌 내것이 드러날 수 있게, 내 능력이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면은

 

하실래요 마실래요?  (하고 싶습니다. 웃음)

 

해볼래요?

 

그런데, 어느만큼이냐 하면, 부처님 만큼,

 

부처님 만큼

 

그러니까 뭐예요. 성불 할 수 있는 방법이, 키워드가 복잡하냐 안복잡하냐, 그렇게 안복잡하게 나와요.

 

자, 인제, 그..

 

어떻게, 안복잡한것 같은데, 쉬운것 같으면서도...

 

인제 우리가  오늘 한 단락을 해볼건데,

 

거기에서 우리 경전 한번 봅니다.

46쪽이에요.

 

 

 

 

"어떤것이 열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여래를 칭찬하는 것이고 셋째는 널리 공양을 닦는 것이고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여 없애는 것이고 다섯째는 공덕 功德을 수희 隨喜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부처님이 세상에 머무시기를 청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서 배우는 것이고 아홉째는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고 열째는 널리 다 회향하는 것이니라. 선재 善財가 부처님에게 사뢰어 말하기를 어떤 것이 예경 禮敬이며 내지 乃至 회향 廻向입니까?"

 

"어떤것이 열가지인가." 열가지 방법을 배워야 된다고 했지요.

 

“첫째는 모든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고” 아니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은 항상 하고 있는 거잖아요. 평소 공경하고 예배하잖아요. 근데, 내 인생이 별로 변화가 없거던,

 

뭐야? 요렇게 물음표가 찍힌게, 제가 출가해서 처음 보현행원품을 읽을때 느꼈던 물음표예요.

 

뭐야? 부처님 예배하고 공경하고 다하는데,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인가?

 

이것만 가지고, 안바뀌는 것 같은데. 근데 부처님 법문이 그렇게 그럴 리가 없거던, 그래서 의문을 가지고,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밖에 없었겠죠.

 

“두번째, 두 번째는 여래를 칭찬하는 것이고” 아니 당연히 여래를 훌륭하다고 칭찬하죠.

 

그런데 아무리 칭찬해도 내 인생이 안바뀌는 거라.

 

이게 뭔가,

 

뭔가 예상 한것에 비해서 뭐가 안나타나면 그때는 뭐예요? 누가 오해 했을까? 부처님이 설법을 잘못했을까요? 안그러면 제가 경전을 잘못 이해 했을까?

 

잘못 이해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이렇게 잘못 이해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누군가 옆사람이 이야기 합니다. 내가 다보고 다들었거던, 그런데 다보고 다들은것 같은데 뭔가가 엇나고 있어.

 

그러면은 내가 잘 이해했을까? 아니면 잘못 이해 했을까? (잘못이해했어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해요? ‘왜 그렇게 말해놓고 행동은 그렇게 하느냐고?’ 따질까요?(따지지요.. ㅎㅎ)

 

평소에 평소에는 어떻게 해요. 따져요. 어..

 

그다음에 세 번째 한번 보까요? 여기는 열가지 공덕에 이름만 나열한 거예요. 경전의 설명은 각각의 설명은 뒤에 나와요.

 

“세번째는 널리 공양을 닦는 것이고”

 

자 공양을 닦는다, 공양을 실천한다. 이런 말인데,

 

우리가 공양을 실천한다는 것은 공양이,

 

공양하셨습니까?라던지, 어디에 공양을 한다. 라는 이런 말을 하죠.

대중 공양이런 말도 있고.

 

자 공양이란 말이 뭐냐 우리 공양이라는 말 말고 많이 쓰는게 보시,

 

보시는 뭐죠? 베푸는 거예요.

 

그다음에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게 뭐냐하면 주고 받는 것, 'Give and Take' 그쵸.

 

자 주고 받기

 

이렇게 하는데,

 

평소에 이렇게 하면서 뭐예요,

 

사람들은 머리도 좋아.

 

뭐냐하면, 내가 저사람한테는 저번에 얼마를 주었거나 받았다. 이걸 꼭 기억하고 있어야 돼,

 

그리고 똑같지는 않지만, 근사치에 맞게 형식상이라도 또 다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이게 안되면, 이걸 잘 못맞추면 어느순간에 놀이그룹에서 살짝 돌려져요. (웃음) 그런게 있나요? 네 그런거 있죠.

 

그런데, 여기에서 기브엔 테이크의 마음에서 한단계 올라가면 보시라는 상태가 나타나요.

 

자 보시는 베푸는 거죠. 그런데, 돌아오는 것을 전제해서 베풉니까? 돌아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베푸는 것입니까? (돌아오는거 전제하지 않아요)

 

돌아오는 것은 전제하지 않는데, 대신에 뭘하죠? 보시를 하면서 끝발을 세우면서 하는 보시가 있고, (웃음)

 

끝발을 떼고 하는 보시가 있어요. 그렇죠.

 

아니, 부모님이 자식한테 베풀던, 자식이 부모한테 베풀던, 돌아올 거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죠, 공치사를 묻혀서 하느냐,

 

공치사라는 고물을 묻혀서 하느냐, 떼고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뭐가 되요? 유주상 보시냐? 무주상 보시냐?

 

그런거 있죠.

 

자, 그런 얘기 들어봤죠?

 

소유권, 공치사권을 떼느냐 붙이느냐?

 

그런데 이 보시보다 한단계 더 올라가면 공양이라는게 있는데,

 

거기에 공양을 하는데 그냥하는게 아니예요.

 

진실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공경하는 마음 ,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보시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보시하면 무엇이 되느냐.

 

공양이라 그래요.

 

자 그러니까 내가 공양하셧습니까? 하고 물으면 '네, 공양했습니다.' 하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이렇게 공양을 준비한 사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당연히 가지고

 

자기 자신을 소중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당연히 갖고. 그렇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음식을 맛있게도 먹고, 또 알맞게도 먹고

 

자기에게 공양할 때 과식하는것 자기에게 공양하는 태도가 될까, 안될까요?

 

자기도 소중하게 대접해야 되겠죠. 공양을 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귀중하게 여기고 자기자신도 귀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뭐냐하면,

 

스스로를 또 어떻게 해요. 존중받을, 나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할 문제가 아니예요. 존중받을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 가는거예요.

 

그리고 존중하는 행동은

 

존중하는 행동은 누가 먼저해요? 당신이 하고 나면 내가 하겠다 이렇게 되나요? 아니면 내가 먼저 시작하나요? (내가 먼저합니다.)

 

니가 먼저해야지 내가 하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내가 먼저 하니 이렇게 되나요?

 

이 먼저하느냐 나중하느냐 여기에 걸려가지고

 

이거에 걸려가지고 뭐죠

 

그거 못넘어가면 계속 서먹서먹한 상태에서 애매하게

 

관계는 처음에는 말랑말랑하다가,

 

니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해가지고 미적거리다가 상태가 굳어지면 화석처럼 굳어져요.

 

그때는 어떻게 되? 넘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

 

그렇게 굳어지면 그렇게 익숙해지고 그리고 그다음에 꼼짝을 못해요.

 

 

 

그래서 공양을 연습하는거예요.

 

공양을 연습하는, 거 이 공양을 닦는 건데, 자, 그것도 뒤에 경문이 나오니까...

 

자 요부분은 뭐예요.간단하게 제목만 이야기하는 거니까. 가볍게 이야기 하겠어요.

 

자세한 것은 뒷부분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여 없애는 것”

 

업장, 업장을 참회를 해야되는데, 업장이 있나 없나

 

보면은 나는 어떤 업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안그래요.

 

그럴땐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내가 만나는 환경 ..

 

저기 물질환경이나 사람환경 속에서 거슬리는 환경을 많이 겪을수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은 움직이고 싶은방향으로 움직일수 있어요? 아니면 장애가 발생되요? (장애가 발생되요)

 

장애가 발생되는 만큼이 내 업의 속성이 가지고 있는 장애거던.

 

자 나는 누구하고 껄끄럽죠?

 

있어요.

 

그다음에 나는 요자리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을수 있어야 되는데 내 업의 시스템은 이 자리에서 브레이크가 안밟혀,

 

그러면은 자동차로 말하면 브레이크 성능이 안좋은 상태에서 코너를 돌아야돼.

 

어떻게 되요. (사고가 나요)

 

그렇듯이 내 습관체계에서도 브레이크가 안밟히는 자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업장이 될까 안될까? (업장입니다)

 

그러죠.

 

자 나는 존중을 받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의 존중을 못받아.

 

가치 평가가 떨어져 있어 존중을 못받고 있어.

 

업장이 발생이 되요 안되요. (됩니다)

 

관계상 장애가 발생되요 안되요.

 

내가 존중을 하면 문제가 풀리는데, 죽어도 존중을 하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엉켜,

 

 

그런 자리가 있어요. 그쵸.

 

자 이 자리 다 업장이에요 아니예요. (업장입니다)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요.

 

‘인생 꽈배기’,

 

제대로 꽉꽉 꼬여서 살수가 있어요.

 

자 꽈배기는 그대로 정체된 상태로 있나요. 안그러면 시간이 갈수록 더 꼬이나. (더 꼬입니다)

 

그렇죠. 주머니 속에 이어폰

 

넣어놓으면 그 줄이 어떻게 되요? (꼬입니다)

 

꼬아서 넣은 적은 없는데 꺼내보면 언제나 (꼬여있습니다)

 

우리 업의 시스템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감각이 없으면

 

주머니 속의 이어폰 줄처럼

 

나중에 보면 이게 이렇게 많이 묶이고 꼬이고 엉켰나,

 

세상 놀랄만큼 꼬이고있어요.

 

별 의도가 없었던 자리에서도 막 꼬여가지고 있는 것 아시죠.

 

자, 업장이라는게 우리생활하고 멀리 있다? 아니면 내 생활을 감싸고 있다. (내 생활을 감싸고 있다).

 

자 나는 생각이 시속 60키로다, 그런데 나하고 같이 있는 사람이 생각의 속도가 80키로이거나 40키로다.

 

그럼 뭐라그래요.

 

40키로인 사람은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냐고 하겠죠. 80키로 인 사람은 왜 그리 답답하냐고 하겠죠.

 

그런데 나는 60키로야. 일방통행으로 60키로로만 달린다. 60킬로로만. 장애가 발생이 될까 안될까. (됩니다)

 

내가 그래도 고집이 있지 내가 60키로라니까? (ㅎㅎ) 

 

 

왜?

 

패턴을 익히고 나서 그 패턴에 대한 애착이 있거던, 그죠. 

 

그런 부분도 참죄업장, 업장을 참회하고 없애는 그 대목에 가서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 그다음에 “다섯째는 공덕을 수희 하는 것이고”

 

수희 한다는 것은 뭐냐하면 따라 기뻐하는 거예요.

 

우리가 또 공덕을 이야기 하기전에 그 뭐냐하면,

 

우리도 인생을 살려면 계산이 필요해.

 

어떤 계산이 필요하냐 하면은.

 

복덕이라는게 있고

 

공덕이 필요한데. 그런데,

 

이것중에서 뭐냐하면, 자, 복이 좀 많았으면 좋겠죠. 복이 있는 사람은

 

뭐를 생각없이 질러도

 

뭐 좀 일이 되죠.

 

복이 안될려면 100퍼센트라고 확신했는데, 100퍼센트가 아니었는가베. (ㅎㅎ)

 

그런 일들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100퍼센트라고 확신하고 봤는데

 

거 묘하게 옆길로 새게끔 인생이.

 

복이 좀 덜 될땐 살짝 새요.

 

자 이렇게

 

우리는 내가 가진 복덕은 어떻게, 

 

(음덕은) 과거생에서부터 쌓아오고 현생에 이시점까지 쌓아 온거거던

 

자 이부분은 우리가 비유해서 이야기 하면 은행의 예금고와 비슷해요.

 

내 주머니에 당장 없지만, 예금되어 있으니까, 필요할 때 작동할 수 있을까 없을까? (있습니다)

 

근데, 양덕은 내 주머니에 있는거예요. 내 지갑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예요?

 

당장 발휘하는 거예요. 그런데, 당장 발휘하던

 

당장 발휘해서 쓰던,

 

음덕이 없으면

 

음덕이 없는데 내 지갑안에 있는 것 몽땅 다 쓰고나면 어떻게 되죠?

 

그다음에는 뭐돼?

 

빈털터리

 

그러면 현재 내가 지갑이 두둑하다고 해도 음덕이 없으면 위험해요 안해요? 위험하죠.

 

음덕은 벌어들이기가 쉬워요? 안쉬워요? (어렵습니다)

 

음덕, 복을 받아들이는게 안쉬운데. 그런데 쉬운 방법이 뭐냐하면

 

이 수희공덕이에요.

 

뭐냐하면 부처님이

 

불보살님이 공덕을 짓는 거를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공덕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같이 이렇게 몸과 마음과 정성을 모으면

 

부처님의 공덕을 따라서 내 공덕이 커지는 거예요. 내 복덕이 커지고

 

그 다음에 또 뭐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해나가.

 

그런데 그사람 힘이 살짝 딸리는 것 같아.

 

그럼 어떻해요? 내가, 이면에서 도와줘

 

빛깔은 누가나요? 그분이 나요.

 

그럼 그분은 양덕 드러난 복을 누려요.

 

나는 어떻하지?

 

음덕이 쌓여요. 음덕은 뭐예요. 당장 손에는 안보이는데 밑에 저축이 되요. 들어가요. 

 

이렇게 저축이 되어 축축 쌓이다 보면 어떻게 되요.

 

이게 음덕이 쌓여서 작동 할 때가 되면

 

예전에는 뭐를 해도 이리 막히고 저리 막혔는데 

 

어느 순간부터 뭐를 하면은 일이 이렇게 나사 풀리듯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그런 대목들이 있어요.

 

저분하고 내가 사이가 안좋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어느순간 접촉해보니까

 

사이가 생각했던것과 안같게

 

장애가 없어져 있어. 잘 이해는 안되지만, 그런 순간이 있어요.

 

이렇게 음덕이 필요해.

 

그럴때 다른사람의 성취를 다른 사람이 훌륭한 일을 했을때,

 

우리는 복을 까먹는 방법이 뭐냐,

 

다른사람이 잘나갈 때

 

복을 까먹는 방법이 일단 시기하는 거예요.

 

재수 없어..

 

그리고 찬스만 오면 발을 탁 걸어가지고 넘어뜨리고 싶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이렇게 되면은,

 

자 내가 어렵게 어렵게 하다가 땅을 샀어요. 그런데 내 소중한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 막 배가 아파서 못살아. 그 꼴을 보고 나면 어떻게 되요.

 

관계가 어떻게 되요. 관계에 장애가 생겨요 안생겨요?

 

내가 안 일으켜도 저절로 장애가 막 생기죠.

 

그러면 내가 배가 아프고 있으면?

 

내가 배가 아플때, 다른 사람이 속내로 뭐 생각하는 거를

 

우리가 그사람이 배 아파하는 거를 말안해도 내가 알아차릴까 모를까? (알아차려요)

 

알아차려요? 감이 왓죠.

 

열에 열 다 알지는 못해도 지나다 보면 눈치채죠.

 

그러면은 다른사람이 잘될때 내가 배가 아프다면 다른 사람은 알까 모를까? (알아차리겠죠.)

 

비밀이 있다 없다. (없다)

 

일단 비밀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은,

 

부부사이에도 못알아차리는 일은 없다. 모른체 해주는 일은 있어도.

 

 

아니 생각을 풀어가봐요. 못알아차리는 일은 없어, 모른 체,

 

그런데 모른체 하고 있어도, 내 속이 편할까 안편할까? (안편하죠)

 

그런데 어느날 와서 '왜그래' 하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말하기는 곤란한데

 

'그걸 몰라서 묻냐고' 이렇게 시작하면 쌓인게 많은 거예요.

 

장애가 많거던, 그죠

 

어때요. 이런 식으로 해서 장애를 착착 쌓는 경우가 있을까 없을까? (많지요)

 

자 이, 다른 사람이 잘 나갈 때 기뻐하는 연습을 하는거예요.

 

그리고 조금 힘들때 도와주는거예요.

 

그러면 음덕이 쌓인다. 부처님이 보증해 주셨어요.

 

그리고 음덕이 쌓이면, 음덕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다,

이런 말이 있거던,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음덕을 쌓은 집안에는 여분의 경사가 있다. 보통 선업을 지으면 자기 선업을 가지고 가요.

 

그런데 일정부분을 남겨둬,

 

누구한테, 자손들한테,

 

자손들한테 줄 수 있는게 음덕을 남겨 줄 수가 있어요.

 

이부분은 우리가 시기 질투를 극복하고 여기에서

 

내가 기반이 없어도 복덕을 짓고

 

음덕을 쌓을 수 있는 그런 방법들,

 

그다음에 금강경의 내용까지 합치면 더 훌륭한 이야기가 나오죠.

 

“여섯째는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것이고,”

 

법륜을 굴린다는건 뭐냐하면,

 

그 옛날에 전륜성왕이 요즘말로하면

 

요즘 장갑차보다 훨씬 큰 수레를 굴리고 나가면 한바퀴 돌면 전부다 기가 다 죽어서 진압이 된데요.

 

그러니까 뭐예요. 상대를 딱, 조복시키는 힘을 가진 수렌데.

 

수레바퀴인데 법을 비유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법륜을 굴린다.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의 법문을 왜 법의바퀴를 굴린다고 하느냐 이렇게 이야기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은 누구하고 안싸워요.

 

니 옳네 내 옳네 이런 이야기를 안하거던.

 

그런데 부처님이 법문을 설하시면은

 

그냥 이렇게 마음이 맞네 맞네 이러다가 마음이 풀려

 

그러고 지혜가 열리고 또 따라서 생각하다 보면은

 

자. 이제, 지금 우리가 40분 50분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들이 들어요.

 

내가 잘한다고 살았지만, 내가 잘한다고 한게 안좋은게 있네, 그런게 있죠.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았을때,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머리로 만날까 습관으로 만날까? (습관)

 

저기 상대가 나를 대할 때는 내 머리를 만나요? 내 습관을 만나요?

 

내 말씨, 마음씨,

 

마음씨를 만나잖아요. 그리고 생각은

 

내 말씨를 따라서 표현되거나,

 

마음씨를 따라서 표현되거나,

 

그리고 행동을 따라서 들어날 수 있는데.

 

자 그런데, 내 몸씨 말씨, 마음씨가 내 생각대로 말을 들어요 안들어요?

 

그러면은 내 생각이 잘 전달이 될까 안될까?

 

그러면 내 몸씨, 말씨 마음씨를 제외하고 내 생각을 전달할 방법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안 쉽죠. 그걸 제외하고는.

 

그런데 내 몸씨 말씨 마음씨가 내 생각하고,

 

생각의 흐름하고 괘를 달리해,

 

그런 부분이 적어요 많아요? (많습니다)

 

그러면 왜 내 생각을 이해 못하냐고 이렇게 억울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을때

 

억울하기만 한걸까? 표현 미숙일까?

 

표현 미숙이 발생될때, 결국은 뭐예요?

 

오해는 누가 불렀다. 내 기대치와 내표현법이 일치한다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안 그런데, 내 생각은 안 그런데 왜 자꾸 오해하냐구

 

이렇게 이야기 이전에 뭐를 연습을 해야한다? (표현과 생각을 일치시키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이거 연습 안해두면 어떻게 되요.

 

오해는 필수적으로 따라온다.

 

그렇죠.

 

그런데, 잘 이해..

 

어때요. 감정이 생각데로 따라 와요 안따라와요.

 

감정이 말 안들으니까. 뭐라거래요. 자기 자신이 생각이 '가만히 있어' 이러거던.

 

그러고 자기 자신의 감정도 억눌러요.

 

그러죠

 

또 감정이 막 힘을 받으면은 감정이 자기 이성한테 '가만있어 이러거던'

 

그러다가 이게 자기 감정이나 이성에게만 가만있어 이러는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과 이성한테도 가만있어 이러거던.

 

이게 우리 삶이에요 아니예요? (맞습니다)

 

나는 그대로 되고, ..

 

나는 그래도 되고예요.

 

내가 그러는 거는 다 이유가 있나요? (웃음)

 

자 우리가 이렇게 무언가 해야 할것들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해야되는지에 대한 이런

 

개략적인 흐름들이 요 제목만 주욱 읽어봐도

 

나오죠.

 

그 다음에

 

법륜을 굴려주면은

 

그 설법을 이렇게 해주신다는 건데,

 

설법을 해주시길 청하는것은

 

들을려고 하는거예요 안들을려고 하는거예요? (들을려고하는거예요)

 

머리로 들으려는거예요 몸씨 말씨 마음씨로 들어야 될까?

 

그쵸.

 

어떻게 들어야 되는가.

 

자 우리가 몸씨 말씨 마음씨로 들은거를 뭐라 그래요?

 

그렇게 배우는 걸 뭐로 배운다. 인성으로 배운다.

 

머리로만 배우면,

 

머리로 배웠는데

 

지식으로만 배웠는데 그게 몸씨 말씨 마음씨로 전달이 안되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이 저기.

 

이런 부처니의 말씀이나 이런 성인의 말씀을 머리는 잘아는데 전달이 안됐다.

 

그럼 그걸 뭐라 그러냐 하면, 똑똑한 바보.

 

그걸 경전에서는 뭐라고 하냐하면,

 

종일수타보 자무반분전(從日隨他寶 自無半錢分)'이다 이런 말이 뭐냐 하면,

 

하루종일 은행직원이 돈을 세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세요. 자기돈 있어요 없어요.

 

아무리 많은 돈을 세아려도 굉장히 많은 것을 자기 것처럼 했는데 실제로 자기 살림살이는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알도록 권장하는거예요.

 

그런데 알도록 권장하는 것은

 

첫 번째는 알고 이해하는게 중요하거던,

 

그다음에 두번째는 뭐냐하면 이야기를 좀 해요. 소화를 좀 시켰는지.

 

소화를 시켜야 흡수해야 내꺼지.. 이렇게 이야기 해요.

 

그다음에 흡수를 조금 하는 것 같으면 그다음에 뭐라고 해요. 운동을 좀 해가지고 활력에너지로 바꿔줘야지.

 

이렇게 차곡 차곡

 

이야기를, 이렇게

 

부처님 법문도 그런거예요.

 

법문을 청하기를,

 

법문을 청하는 것이 어떻게해요.

 

법문을 청하는 방법중에 뭐예요. 경전을 읽는 것도 법문을 청하는 방법이죠. 그럴까 안그럴까?

 

“일곱번째, 부처님이 세상에 머무시기를 청하는것”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무시기를 청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법문을 청해서 실천하는 사람이 없으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던 안계시던 상관이 있어요 없어요.

 

부처님이 머무시기를 바란다는 건 부처님 법문이 현실화되게

 

세상에 이렇게 이루어 지게 청하는 거죠. 이렇게 청하는 마음속에는 뭐죠.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겠죠.

 

그리고 그다음에

 

정종사에서 보현행원품 강의가 있다. 이건 뭐예요.

 

부처님의 법문을 가지고서 같이 공부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가요. 생각을 열어갑니다.

 

자 이렇게 하는 자리에는 부처님의 법문이 법사를 통해서 다시 재현되고,

 

그리고 그런 자리에는 부처님이 항상 증명을 하시고

 

그러죠.  

 

그 뒤에 보면 "여덟번째, 부처님을 따라서 항상 배운다."

 

그죠

 

따라 배우는 거는.. 우리는 옛날에는

 

요즘은 머리로 배운다 하지만,

 

우리는 부처님 법문을 배울때는 뭐로 배운다.

 

신업 구업 의업으로 배운다. 신업 구업 의업으로 배우는건, 몸씨 말씨 마음씨로 배운다.

 

그러죠.

 

자 사랑을,

 

사랑이라는 말을 머리로 배운 사람하고,

 

몸씨 말씨 마음씨로 배운 사람은 만났을때 느낌 이 어떨꺼 같아요.

 

두사람이 그럽니다. '사랑해'

 

몸씨 말씨 마음씨에서 푹 묻어나는 사람하고 안묻어나는 사람하고.

 

 

 

자 우리가 연습해야 되는 자리가 어딘지

 

다시 생각을 해보시는 거죠.

 

자 이렇듯이 여기에 보면

 

"아홉번째, 항상 중생을 수순한다."

 

다른이들을 수순한다. 내가 수순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따라주기를 바라는게 있죠.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다른사람이 나를 따라서 행복해질수 있게끔

 

내가 내 모습을 갖추어야 될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를 따라오면 

 

따라오는 사람이 고달픈 삶이 되게끔 해야될까

 

내모습을 어떻게 갖추어야 될까

 

나를 따르라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를 따라오는 사람이 고달플 것 같으면

 

나를 따랐으면 좋겠다는 원이

 

우리가 괴로움을 줄이고 행복으로 나가는 방향이 될까요? 안될까요?

 

자, 나를 따라라 중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세요 하는 것도 나를 따라라 하는 것 중에 하나죠?

 

자, 제가 하는 말을 따라 듣고서 따라 듣는데 그냥 힘들기만 하고 지루하기만 하고  

 

그러고 시간만 낭비하는것 같으면은

 

이야기를 듣는게

 

괴로움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방향으로 갑니까 안갑니까?

 

자, 그러면 우리는 매 순간 순간을

 

어느 방향에서 각을 잡아야 될까? 요렇게 잡는데

 

이론과 방법이 있느냐? 있죠

 

뒤에 다나와요.

 

“열번째가 회향”이라는 건데

 

널리다 회향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 회향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올인, 다 투자해서, 그래서 목적한 바를 성취하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중에서 뭐예요

 

자,

 

가장은 자기가 벌어오는 것을 가족에게 올인해서 뭐를 얻고 싶죠?

 

가족의 행복을 얻고 싶어요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얻고 싶습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그러면 가족을 위해서 회향한 거예요.

  

자 회향이라는 말이 느낌이 오죠?

 

자 그다음에 뭐예요?

 

깨달음을 위해서 회향한다.

 

깨달음에 회향한다. 그건 뭐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그쪽에 이렇게

 

그중에서 중생에 회향한다.

 

또 깨달음에 회향한다.

 

이렇게 회향하는 방법이 있어요. 

 

중생에 회향하는 방법중에는 일차적으로 가족에게 회향하고,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둔다.

 

나 자신에게 두는 방법이 있고,

 

우선순위를 상대에게 요렇게 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데 인제 다른 사람에게

 

함께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두었을 때

 

이쪽에다 우선순위를 두었을때

 

이분들이(받는분) 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주는분이 안정감을 느낄수 있게끔.

 

여기에다가 우선순위를 이렇게(가족에게 주는) 주고 있는데

 

이쪽을 불안하게 만들면 

 

계속해서 우선순위를 밀수 있어요 없어요?

 

그러죠

 

안정감을 어떻게 줄것이냐.

 

받는 자리에서 이게 만족이 아니야.

 

그죠

 

그부분에 대해서 눈을 떠야되요 안떠야되요

 

큰차원에서 이런것들을 하는 것과 일상에서 하는 것을 두가지를

 

큰 법의 차원에서 다루면 뭐죠

 

궁극적으로 부처님과 같아지려고

 

일상의 차원에서의 해석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현재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그러면서 뭐예요.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부처님처럼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두가지 목표를 가지고 보현행원품을 읽어나가겠습니다.

 

잠시 쉬었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