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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목련,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지금 운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글 중 베껴가며 읽었던 글이 다시 등장한다. 이 글을 읽은 후와 읽기 전이 달랐다.



시청마당엔 매화가 있고 동백이 있고 벚꽃이 있고 목련이 있고 사과꽃에 산수유까지 있었다. 그전에는 이 꽃이 뭐더라 하면서 시큰둥 지나가던 점심 산책길이 꽃을 보며 경탄하며 보내게 되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목련이다. 내가 그림도 배워봤는데 배우다 말았지만, 첫 습작이 목련이다. 그 그림은 미완성으로 아직 집에 있다.

목련이 필 때를 묘사한 김훈의 글은 가히 압권이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그후로 난 호롱불 같이 자태 고운 목련 봉우리만 보면 몸살을 앓는다.

그 목련,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로 시작하는 이 꽃의 죽음이 슬프다.

오늘읽은 시. 김춘수의 <강우>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웬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해설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성의 시인 김춘수도 흐르는 눈물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어찌 살아야 할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빗발 탓이 아니다. 눈물 탓이다. 외로움과 허전함, 그 모든 착잡한 심사 앞에서 강인한 정신의 그도 풀이 죽는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고 느닷없이 눈물이 터진다. 그도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운다. 배경을 모르면 생뚱맞을수 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시 속의 사랑과 사랑을 잃은 노인이 보인다. 오늘 아내가 이뻐보인다. 이 시를 읽고 나니 입술에 키스를 해주고 싶어졌다.

김춘수 시인이 목련을 노래했다.

김춘수 <바람>

자목련이 흔들린다.
바람이 왔나 보다.
바람이 왔기에
자목련이 흔들리는가 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자목련까지는 길이 너무 멀어
이제 막 왔나 보다.
저렇게 자목련을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웬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죽비죽 입술을 비죽인다.



나는 아이폰으로 바람을 찍으려 무던히 힘 쓴다. 바람을 담고 싶다. 잘 안찍힌다. 바람을 보며 김춘수 시인은 아내의 입김이 스며 있다고 말한다.




김훈의 말을 빌리면 이제부터 자목련은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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