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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도암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설' 제6강-1부

도암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설 (2016년 제1회 정종사 불교대학)

 

강의자료 : 보현행원품 강설 (혜남 저, 부다가야 출판)

 

강의일자 : 2016.2.17(수) 19:00~21:00

 

강      설 : 무문 도암스님

 

불교대학 : 양산 덕계 소재 '정종사' (주지 : 여해스님)

 

 

 

 

 

오늘은 116쪽

부처님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는 수행(隨喜功德)

사실은 부처님만 들어가는게 아니에요. 원래 제목으로 하면,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이야기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는 수행이라고 하면 맞아요. 미래의 부처님은 누구예요? 첫 번째 후보가 미륵부처님이에요. 그다음은 누구예요? (일체중생) 그죠. 일체중생이지요. 순서로 보면 누가 되겠어요? 누가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겠죠.

자 이부분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다시 따라 읽겠습니다.

“다시 선남자야 수희공덕이란 것은” 공덕을 따라 기뻐한다는 것은

“있는바 온 법계” 모든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의 극미진수 제불여래” 그렇게 무진장으로 많은 제불여래가

“초발심으로부터” 처음 발심했을 때부터

“일체지를 위해서” 깨달음을 위해서

“부지런히 복취를 닦되” 복덕을 닦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기를” 뭔가 이런 목표를 정해놓고 나아가는데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전진해주는것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이 지나도록 낱낱 겁 가운데 불가설 불가설 불찰 극미진수 머리와 눈과 손과 발을 보시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한 사흘 정도 인내를 발하였으면 어떻게 말해요.. (나도 할만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니까. 부처님의 용량이, 부처님이 되려면 커요. 어느만큼 커요? 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이 지나도록, 그러면은 이 이야기에는 머릿속에 타이머가 들어있다 안들어 있다? (안들어있다)

타이머로 재고서, 그다음에 횟수로 재고 있다 안재고 있다.

그러니까 기본 셋팅이 조금..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요. 우리는 현재는 타이머를 재고 있고 현재는 횟수를 재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안재고. 언젠가는.. 그죠 이렇게 되기를 염두에 두고, 바라면서

그런데, 그다음에 여기에서 아니 내가 내머리 잘라줘봐야 뭐에 도움이 되겠어요. 눈 빼준덜 무슨 도움이 되고.

그런데 내 머리를 잘 써서 내 눈을 잘 활용해서

그렇죠. 소신공양중에서 내 에너지를 태우는 것도 소신공양이거던요.

뭐냐하면 내 에너지를 내 몸과 마음 에너지를 태워서 누군가에게 공양할 수 있는거죠.

그렇게 하면은 할 수 있는게 굉장히 많죠.

이런 것들이

아니 에너지를 태우잖아요. 향처럼 내 몸 태울려고 하지 말고,

그러면 고(苦)만 증가가 되요. 괴로움만 증가가 되는데, 그게 아니고

잘태워야되. 그러니까 이렇게 법을 이렇게 설명할 때 비유로 말씀하신게 많거던, 경전에는.

그런것은 비유로 설명하시고 비유로 설명한거를

그것을 법으로 바꿔보는거예요. 그래서 법과 비유가 편안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을 법유에 능통하다. 법과 비유가 왔다갔다 호환이 돼서 해석이 잘된다. 그러죠.

이게 중요한 거예요. 비유로 말할 것을 법으로 받아들이면 제대로 엉키게 되어 있지.

그러고 '글쎄 부처님은 할려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안하는게 좋겠지.' 이렇게 되는거예요. 그렇죠.

자, 다시 읽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체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아니 누가 공치사하는데, 한시간 정도 눈동자 안풀고 들으주려면은 쉬운 일이에요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가 난행을 능행한다. 어려운 일을 행하기 어려운 일은 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할 때 힘 좀 써야되는 것은 다 해당이 되요.

산에 오르려 준비를 좀 했어요. 히말라야에 오르려고, 그러죠. 아니 산에 오르라니까 산에 오를 준비를 해요. 어디를요? 히말라야요. 아니 뒷동산도 있다니까! 우리 건강은 뒷동산이 협조를 잘하지 인생에 한두번 갈까 말까한 히말라야는 내 인생에 내 건강에 도움이 많이 안된다니까. 그쵸. 내가 접촉할 수 있는 환경안에서 접촉할 수 있는 환경안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한 사람한테 인격자가 되느냐? 늘 접촉하는 사람에게 인격자가 될꺼냐?

어느게 진짜 인격자 같아요? 아니, 어려운 일을 능히 할수 있는거.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가지가지 바라밀을 원만히 하시며” 그러니까 그속에 뭐에요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는 방법이 응, 바라밀이니까. 좀 거기 그사람이 밉잖아요. 그사람 미워하고 점찍어 두고 볼때마다 미워하고 점찍잖아요. 그러면 미움이 쌓여가지고 나중에는 뭐냐하면 이렇게 자신도 넘을수 없는 장막이 가리거던 그럴때 어떻게 하냐 하면 잘해주는 거야. 내가 마음을 열고 잘해주잖아요. 그러면 마음을 열어서 잘해주다보면 그사람도 경직되어 있던 모습에서 바뀔 수도 있고 그다음에 나도 그사람에게 잘 해주고 나야 그사람의 장점이 보여. 그 미운사람 밉게 보고 있으면 장점이 안보여요. 그런데, 누군가의 장점을 보고 있잖아요. 그러면 A, B. A 입장에서 보면 B가 어느날 장점이 보이기 시작해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되죠. 인정을 흘릴수 있는 네트웍이 생겨요. 그러고 이렇게 해서 이쪽으로 인정이 가면 반대쪽으로 인정이 흐를수 있는 길이 생겨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냉냉한 기운만 나누던게 요게 네트웍이 형성되면서 따뜻한 기운도 왔다갔다하게 되어 있거던.

길이 없던 길이 생기는 거예요. 그 방법중에는 보시도 있고, 지계도 있고, 인욕도 있고, 정진도 있고 그죠. 염장지를때 안흔들리고 안정되고 선정도 있고, 그 다음에 반짝반짝 지혜도 있고, 6 바라밀

“가지가지 바라밀을 원만하게 하시며 가지가지 보살지 지위에 들어가서” 이렇게 잘하다보면은 어디로 가요. 3현 10지. 환희지, 이구지, 그죠. 응 자 이런식으로 올라가서, 그다음에 법운지도 있죠?

등각, 묘각 이런자리도 있고. 여기서 보살지위는 등각까지를 이야기해요.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시고” 무상보리를 성취하시고

“열반에 들어서 사리를 분포하신” 이건 뭐예요. 우리 부처님이 그렇게 하셨죠. 그런데 모든 부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 안하셨을까? 과거 현재 부처님. 다 하셨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하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체의

“선근들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하며” 자, 내가 따라서 기뻐한다. 어느 선생님이 있어, 내가 따라서 기뻐하고 있어 훌륭한 선생님을 내가 따라서 기뻐하고 있으면은 훌륭합니다. 내가 기뻐합니다. 이러고 끝이에요 아니면 내가 배워야 되요. 배울 마음이 안나면은 제대로 기뻐해주는건가 아닌건가? (아닙니다)

자, “저 시방일체 세계 육취사생” 육취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 이렇게 되죠. 이렇게 육취 육도, 그다음에 사생은 뭐냐하면 태어나는 모양샌데, 태어나는 형식인데, 태를 태생으로 태에서 태어나는 방법, 알에서 태어나는 방법, 그다음에 습, 습기속에서 태어나는 방법, 그다음에 또 있죠, 변화, 화생 그 극락세계에도 화생으로 태어난다, 천상에도 화생으로 태어나는 그런 곳이 많아요.

자 그러면 아, 육취는 뭐예요. 여섯층의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육층건물 여섯가지 환경이고, 여섯가지 환경에 태어나는 조건은 네가지, 태란습화, 네가지 그러고 태생으로 태어나서 인간계에 들어갈 수가 있고, 알로 태어나서 축생으로 갈수도 있고, 그러죠. 또 화생으로 태어나서 지옥으로도 갈수가 있고, 지옥도 가요. 자 이런식으로 이런식으로 태란습화는 태어나는 형식과 모양새고 중생을 이야기하고 육도 뭐예요. 환경을

자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경문만 놓고 보면 그말이 그것을 말하는지 좀 그러네 그죠. 자 그렇긴 하지만,

“육취사생 일체종류의 가진바 공덕을” 여기 있는 모든 중생의 공덕을

“내지 한 티끌이라도” 여기 있는 중생중에서, 자 아귀도의 중생중에서 그 많지는 안겠지만은 조그만큼이라도 과거생이던 현재생에 짓던간에 가지고 있을수 있어요 없어요. 지옥중생이라도 그렇겠죠. 티끌만큼이라도 있으면 티끌만큼 이라도 있는 것을 존중하고 그걸 존중하는 거예요. 찬탄하고, 결국 기뻐하는거예요.

자 다시봐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좋은 공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런데 뭐라 그러냐 하면 ‘에게 고까지것 가지고’ 에게 요렇게 하면서 어떻게 되요. 있는 것을 싹 뭉게 버리죠. 내가 뭉겔 때는 당연한데 내꺼 뭉게고 들어오면 어떻게 되요.

내가 뭉게고 들어갈때는 정당하죠. 다 이유가 있죠. 근데, 작던 크던 내꺼 쓱 문데고 들어오면은

해본적 없어서 잘 모르죠.(웃음)

내꺼 이렇게 ‘에게’ 하면서 내꺼를 뭉게고 들어올 때,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큰 것만 트라우마가 아니예요. 작은 것도 트라우마를 형성하는데, 뭐냐하면 아예 난 포기했어 하는 자리는 트라우마가 있는거예요.

잔펀치에는 멍이 안들까? 잔펀치에 멍들면 멍이 아닌가? (멍이죠)

그러면 우리 살면서 잔펀치에 멍들어 가지고 회복이 안되는 자리들 안 있을까?

그러죠, 잔펀치니까 그까짓걸 가지고, 그만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고, 그래?

회복 안되는 잔펀치들. 근데 내가 할 때는 대화예요. 내가 할 때는 대화를 하고, 이게 인식의 차이거던, 내가 잔펀치를 날릴 때는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상대가 날릴 때는 내가, 이게 그 가드도 없이 계속 맞고 있는데, 그런데 그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는 사람이 있죠. 그래가지고 어디 부러지고 터지고 한 사람들 있죠. 가 가지고 요자리가 교통사고 난 아픈자린데, 그곳을 톡톡 두드리면서 계속 건드려요. 우리 좀 잘지내보자. 이러고 있어요.

이거 하고 멍든자리 톡톡 치는거 하고 어때요. 막 비슷한거 아니예요.

우리는 당하기만 했을까 주기도 했을까?

근데 주는거를 많이 했는데, 주는거를 기억을 못하는 게 내가 내 해석에는 그게 내 상처와 고통은 나한테는 현실적인데, 다른사람의 상처와 다른사람의 고통은 나한테는 추상적이에요. 그래요 안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마음을 일으켜서 공감을 할려는 마음을 일으켜서 공감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공감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때 나는 문화적일 수 있을까? 잘못하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 쪽으로 좀 갈 수 있을까?

그쵸. 깨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없을까요? 깨어있는 거는 뭐예요. 다른사람에 대한 공감능력도 같이,

그런데 상대가 얕잡아 보일 때는 공감하려는 에너지를 써요 안써요?

얕잡아 보이는 사람한테 그렇게 내가 에너지를 써고 싶은 생각이 없죠.(어찌그리 잘아는지)

경전을 읽어보면 어떨꺼 같아요. 요런 감각으로 경전을 읽어보면 어떨것 같아요.

부처님 말씀이

“한 티끌이라도 내가 따라서 기뻐하며 시방삼세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유학과 무학의 가진바 공덕을” 자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뭐가 중요하냐하면은 내 목표가,

내 목표는 부처님되는거예요. 부처님 되는 거니까.

자, 지옥중생은 어디까지만 올라가도 성공이에요? 아귀도까지 올라가도 일단 엄청 성공이거던. 축생도 가면 굉장한 성공이고, 인간, 아수라, 천상 그다음에 삼계를 벗어나서 성문이 된다 아라한이 된다 이건 뭐 연각 그죠.이렇게 되거던,

자 지옥에서 아귀도 올라가는 노력하고 아수라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노력하고 어느쪽이 만만치 않게 힘들것 같아요? (밑에서 지옥에서 올라가는게 힘들것 같아요.)

그쵸. 근데 이걸 한참 노력하고 있는데 ‘에게’ 하고 있으면은

그쵸. 근데 다시 말을 바꿔 볼게요. 누군가 노력하고 있는데 ‘에게’ 해서 힘을쭉 빠지게 만들었거던, 근데 천안통이 있어서 보니까. 내 자식이었어. 근데 누가 ‘에게’ 해서 기운빠져가지고 주저앉았어. 뭐라고 하고 싶어요.

그러고 기운빠진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노력하던 그 자리를. 그쵸.

제가 부처님 되는게 목표에요. 그러면 그 밑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다 ‘에게’ 감 아니예요?

그러죠. 내 목표자리하고 다른자리를 목표로 잡을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현재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는 자리가 보일때, 그 자리 하나 하나에 고유평가를 해줘야 될까? 아니면 상대비교를 해서 조져야 될까? 부처님 따라 기뻐하려면은 그 평가하는 기준점을 잡아야 할 것 아니예요.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한달에 300만원을 번다고 치고 그래서 300만원을 가족에게 써고 있어요. 근데, 누가 쳐다보고 ‘에게’ 하고 있으면은

내가 가족을 위해서 쓰는 마음이 ‘에게’감은 아니잖아요. 그죠.

그런데 뭐냐하면 내 목표점과는 다르지만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아줄수 있어야 되요. 이것도 깨어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렇죠

“일체보살의 닦은바 한량이 없는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뜻을 세워 무상정등보리를 구한 광대한 공덕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며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여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다할 날이 있어요 없어요? 쉽지 않죠? 그러면 이게 다할 날이 없을것 같으면

"나의 이 따라서 기뻐함은 다함이 없어서" 그게 다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다른이들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 그다음에 따라 배우기도 하고 그분들이 성취해가는 것을 도와줘서 완전하게 성취를 이룰수 있게 서포트를 해주는 마음도 일어키고

자 보세요, 다시 보까? 부처님이 입장에서는요. 지옥에서 아귀도로 업그레이드 하는 중생을 보면 온 정성을 다해서 밀어주시겠어요 아니겠어요. 인간에서 위로가는 걸 보면 부처님 입장에서 보면 장하다고 격려를 할까 안할까?

그쵸. 아직도 멀지만은 모든층에서 노력하는 중생들을 장하다고 격려하실거예요. 올라가는 순간에 이것이 ‘이고등락’이거던, 이 이고등락이 발생하는 자리는 부처님의 기쁨이 따라가요.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 할때까지 중생업이 다한다는데 내 이 기뻐함은 다함이 없어서

그러고 순간순간 “생각생각이 서로 이어지고 끊어짐이 없어서 몸과 말과 생각하는 업이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왜 언제 피로해 지냐하면 내가 한 사흘은 참지 이러고 있으면요 2.5일되면 피로가 극심해져요. 염장질은 내가 세 번은 참지 그러고 있다가 두 번반쯤오면 거의 극점에 이르러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어놓은 한계선이 있거던, 한계점에 90%에 가까이 가면 꼭지가 돌기...

사실은 누가 설정하는거에요.(자기가요)

근데, 누구한테는 역카운트 100번을 적용해 놓은 사람이 있거던, 그쵸. 그 보살님들은 누구한테 그렇게 적용을 잘해놨어요? 자식한테. 그쪽에서는 대여섯번 염장질을 질러놔도 애가 그렇지 뭐. 이렇게 해요. 아니 사람은 같은 사람이라니까요.

그러고 애들이 지르는 염장은 약하기만 해요? 내 자식이 하는거는 염장질이 약할거 같아요? 그쵸

근데 기본자세가 뭐예요. 받아줄 자세를 잡느냐? 계산하는 자세를 잡느냐

그러죠 누가 뭐라 그러면 세다가 90% 차가지고 꼭지가 돌때 하는 이야기가 그래 내 한계가 이렇다 그정도면 많이 참은거 아이가? 이리 될 수 있잖아요.(웃음)

그죠

근데 사실은 뭐예요? 용량은 그거 아니거던. 그런 용량이 아니거던, 우리는 부처님의 용량과 같이 태어났는데.

안써기로 작정을 한거야. 그러니까 써야할 이유를 못찾는거야. 써면 손해를 보는 것 같거던. 마음을 넓게 써잖아요. 마음을 평소 쓰던거 보다 넓게 쓰려면은 일단 첫 반응이 어떻게 오느냐?

몹시 손해가 났다는 느낌이 들어

그쵸

다음에 세월이 지나서 그때를 평가를 하면, 그때 마음을 넓게 못써서 이 손해를 많이 봤던 것들이 감이 잡히는 것들이 없어요?

그쵸. 그때 그 문제를 예민하게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까요? 섬세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면은.. 그죠

자 그런데

따라 기뻐하는게 왜 이렇게 중요하냐하면은 앞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냐 하면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 시스템 오류중에 2.4대 1이라는 있었어요. 그죠

상대가 나보다 2.4배 정도 훌륭하게 보이면 대략 비슷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죠

그런데 2.4배 정도 훌륭하면은 사실은 많이 훌륭한거잖아요.

훌륭해지기 시작하면 존경, 여태까지는 깔봤으니까. 2.4보다 작으면 깔봤으니까. 사실은 봐봐요. 2.3을 1이 2.3도 깔보고 있었다니까.

시스템 오류에 의해서 깔봐...

근데, 그거를 2.3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되요. 황당하지, 그쵸. 근데 깔봐요. 이런일이 생겨요. 그런데 시스템 오류 입장에서는 1은 정당한거야. 왜냐하면 시스템 오류가 그러니까. 그런데 2.4 여기는 됐어. 더 커졌어. 상대가 한 5.4정도 되. 2.4빼도 한 3은 남거던 세거던. 그다음에 존경이 나와야 되는데 이때 확실하게 세다가 나오기 시작하면, 시기, 질투 이런게 작동해

그러면 요거를 간단하게 시기 질투가 나타날 때.

그 이렇게 우리 혀 끝에 걸리는 멘트가 있어요 ‘재수없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잖아요. 시기, 질투까지 해서 해봐도 어떻게 방법이 없잖아요. 근데 그냥 인정하려니까 속이 불편해요.

그러고 재수없다는 딱지를 붙여놓으면 재수없는 사람은 다리좀 걸어 넘겨도 되요 안될것 같아요.

재수없는 짓 하는 사람을 좀 엎어질때, 엎어지려고 할때 다리를 슬쩍, 그죠. 아니 넘어지려고 할때 다리를 치우면 안걸릴건데, 그거 치울 필요 있어?

이런 마음 나요 안나요? 요게 지금 이거를 소설로 쓰는게 아니라 우리한테 작동이 되고 있는 거죠.

아니 2.4대 1도 시스템 오류로 힘든데, 그걸 극복한 슈퍼를 만났을때 드디어 우리는 다른 시스템에 의해서

자, 2.4대 1보다 작을때도 깔보잖아요 그죠. 그것도 깔보고 있는데, 깔보고 있으면서 뭐가 발생되요. 행복이 발생되요? 고통이 발생되요? 그쵸

2.4대 1보다 클때 이런 관계를 만들면 괴로움이 발생되요? 행복이 발생되요?

그럼 우리는 이것빼고 나서 이상황을 제외하고 어느 상황을 맞이 할 수 있어요? 상대가 나보다 얕잡아 보인다, 상대가 나보다 세보인다. 이둘 빼고, 이두가지 상황을 빼놓고 공간이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가서 행복을 찾아요?

포기할거예요 그러면

아니면 여기를 수정하고 조정해야 할까? 그렇게 수정하고 조정하는 거를 뭐라고 그래요? 수행

그러면 수행은 선택이냐? 필수냐?

심심할 때 여가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반드시 해야하는 건가?

그거 안하면 우리가 행복을 얻기가

누가 행복을 외면하는 거에요?

요것도 요렇게 시기 질투를 일어키는 이 시스템도 있잖아요.

이렇게 2.4대 1로 보는 시스템 오류도 있고, 센거를 보면 시기, 질투를 하는 시스템 오류도 보니까 태어날 때 보니까 가지고 태어나요. 태어나서 배운게 아니야. 아직 말도 배우기 전에 두아이에게 하나는 좋은거 주고 하나는 안좋은거 줘봐요. 둘이 싸워요. 안해봤어요?

애들 연년생으로 키워보면 알아요.

엄마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에서 지들끼리 싸움이 나거던.

한가지 알려드리면

남자는 어릴때는 발에 에너지가 있어요. 여자애는 머리에 에너지가 있어요. 활동성은 어디가 많겠어요. 남자애죠? 그리고 여자애는 똘망똘망해보여요. 누가 활동적이에요. 남자애에요.

20대가 되면 여자는 가슴쪽으로 에너지가 내려와요. 이러면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된거예요. 남자는 아랫도리쪽으로 올라와요. 정신 못차리는 거라.

더 나이가 들면 여자가 아랫도리로 에너지가 내려와요. 남자는 가슴쪽으로 올라가서 철이 조금 들면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요. 여자는 이제 어머니에서 여자로 다시 돌아 왔다갔다해요. 어머니로서 큰마음, 여자로서 옹졸한 마음.. 왔다갔다..해요

마지막에는 남자는 (입모양..) 여기 에너지가 가요 (웃음) 여자는 발에 에너지가 가요. 확 잡히지 않아요.

에너지가 물질도 되고 정신도 되는거거던 동질의 에너지가 결합방정식의 차이에 의해서 나타나는건데, 불교에서는 뭐라 그러느냐하면, 성이라고 해요. 성품인데, 물질로 나타나면 법성이되고, 깨달음으로 나타나면 불성으로 되요.

법성과 불성이 차이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경우도 있어요. 이것을 뭐라고 하냐하면 동질에너지의 표현방정식의 차이다 요렇게 이야기해요.

현대말로 표현하면.. 그쵸

질투, 우리가 중생이 중생이 아닐만한 틈바구니가 쉽지가 않죠. 왜?

얕잡아 보거나 기가 눌리면은 최소

2.4대 1보다 작으면 나보다 힘이 작으면 그사람 전체가 약점이에요. 누군가 약점을 찾고 있다면 그사람은 나보다 센거예요. 왜? 나보다 약하면 절대 약점을 안 찾아요. 그냥 때리지.

그런데 누군가의 약점을 찾고 있다면 센놈이구나.

근데 그거를 센분이구나 하니까, 약점을 찾으려고 하면은 그거를 재수없는 놈이다 그래요.

이렇게 해석을

자 요해석에 말려가지고 꼭두각시 춤을 출거냐 탈출을 할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