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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2) - 위민(爲民)은 없다.(1-1)

 

드디어 1장입니다. 이번 독서는 이렇게 드러내 놓고 하게 되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와 저자가 생각하는 유교를 보면서 제가 느끼는 부분은요, 유교의 경전 특히 논어의 경우에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되는 자구(字句)들이 꽤 있던데 저자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신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따지고 보면 그 이전에 많은 유교의 종주들.. 예를 들면 주희(朱熹) 같은.. 그들이 얘기하면서 풀어서 다시 정립하면서 그 시대상이 후대의 필독서가 되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왔었고, 그러다 보니 원전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해석은 영 이상한, 다른 내용인데, 다들 그러니까 반박하기는 좀 그런.. 다들 '예스' 할때 '노'라고 하기 힘든..

 

그리고 그렇게 '노'라고 하면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하고 이슬처럼 없어져 버렸지 않을까? 상상도 되는.. 그런 것들요.

 

 

첫장부터 위민(爲民)이 아닌 여민(輿民)이 유교의 본령이라고 설파합니다.

 

서문에서 밥을 먹을때, 잠을 잘때도 오롯이 그 행위에 충실하라고 하였는데요, 저자는 삶에 대해서 그 순간순간을 살아버리라고 제안을 합니다. 왜냐? 우리가 사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사는것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을 우스꽝스럽게 이끌고 이로 인한 결과물들을 예를 들어 보입니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 그 속에 나와 나의 희생, 이를 통한 베푼다는 의식 - 여기에는 뭔가를 받아내려는 생각이 끼인다는거지요.

 

일제시대를 살면서 자기 삶을 타인을 위해,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해 희생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이광수'를 예로 들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자신을 회고한 글에서 분명히 이렇게 적었더군요. 하지만, 그는 역사의 변절자이고 동포를 전쟁으로 내모는 글로 일제에 부역했다는 부분을 피해갈수 없지요.

 

목적·대상을 위한다는 생각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여러 모임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위한다고 생각하고 무슨일을 했는데, 그 결과들이 의도한대로 안되는경우가 많았었는데요, 한번 되새겨보게 됩니다.

 

쉽게 정립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라 두고두고 묵혀가며 돌아보고, 앞을 보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