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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4) - 충효는 없다(1-3)

 

책을 잃어 버렸다. 출근길에 바쁜와중에 찾으려니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다.

 

어디서 찾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아침의 어수선함을 비껴두고 버스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비오는 차창 밖을 찍어 올렸다. 어디로 갔을까?

 

저녁때는 곳곳을 찾아다닌다. 운동하는 체육관에서 책을 들고 왔었는데, 그기 어디 두었는지 가보기도 하고, 방방마다 여기저기 두고다니는내 모습을 아니까, 둘레둘레 찾아본다... 없다.

 

 

108배를 아이들과 하고 뱃살 빼보려 크런치를 하는중에 , 잉.. 소파 밑에 뭐가 있다.. 휴..

 

책이다. 그게 11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으니.. 어제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흐름이 끊겼다.

 

효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스럽게 생긴 도덕률이다. 부모의 아무 위하는 마음없는 자식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식의 부모 사랑, 즉 효는? 어떤가? 사실은 작위적으로 만든거다.

 

유교에서 효는 내가 받은 만큼은 해줘야 된다는 자존심의 발로이고, 내가 준것은 받을 생각지도 않는다..는데, 불교를 배우며 법륜스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면서 위한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나중에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런 효를 말하며 논어에서는 효는 기본적인 덕목이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만이 효가 아님을 말하는 대목이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다시말하면, 효라고 하는 것이 맹목적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충과 효를 결합하여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만든 것은 누굴까? 그부분을 적시해놓은 곳이 있다. 한비자에 충효편이 있는데, 법가이고 통일된 중국의 사상의 기반이라고 할수 있다. 전제적인 군주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유학파의 경전 내용을 이미지 재구성하여 다른 것으로 포장해 낸것이다.

 

유교의 핵심덕목인 효행, 공손, 충실함, 신뢰를 뜻하는 효제충신(孝悌忠信)을 효제충순(孝悌忠順)으로 비슷한 말이나 완전히 다른뜻으로 바꾸어 버렸다. 효와 충을 묶으버린것인데, 아버지의 말에 공손한 것처럼 군주에게 순종하라는 말로 바꾸어 버린거다.

 

이에서 출발한 충효는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에서 발현한다. 가정의 효를 기본적인 덕목으로 보는 유교라고 해도 개인적인 정의에 충실하여 그러한 효까지도 불효라고 일컬어 질 정도로 다르게 행할 수 있는 유교인데..

 

일본의 '이에(家)'는 중국과 한국의 가정과 다르다고 한다. 직업을 이어가는 사람이 '이에'에 속하게 되고 장자가 없을때에는 데릴사위가 이 '이에'에 들어오게 되면 이름의 성부터 이 집안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러한 이에의 가장이 말하는 권위는 효의 덕목이 아니라 순종해야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군과 가신들과의 관계로 확장된다. 그기에서 충과 효는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충효'가 흘러 들어온것이다.

 

유교가 젊은이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상황까지 가지 않을수 없다. 내용은 흐트러지고, 엉뚱한 이미지들이 봉건적이고 낡은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꾸역꾸역 이어져 오고 있던 그것들이 유교를 대신하고 있었던거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역사나 문화 그리고 사상까지도 시대가 흘러가면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바뀌고 오도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