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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닥터 지바고를 읽고

닥터 지바고를 읽고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소설 닥터 지바고, 생각보다 어려워서 혼이 났습니다. 일반적인 필치가 아니었습니다. 시를 써놓은 듯 한, 한 구절 한 구절은 음미하며 지나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아쉬웠습니다.

 

유리 안드레예비치(유라)와 라리사 폐도로브나(라라)의 사랑 이야기를 찾고 있는 분이라면 아마 실망을 많이 하게 될 겁니다. 유라의 인생을 펼치며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적 대전환기, 러시아 혁명의 속살을 처연하게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라와 그 옆에 살아나가는 인물들이 하나하나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지바고, 그를 우리시대의 지식인이자 시인이었던 김수영과 대비합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기 바랍니다.) 지바고는 저자인 시인이자 소설가, 보리스 빠스쩨르나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그 광기의 시대에 자신의 사상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살아가는 인물은 저자 자신입니다. 스탈린 시대를 그쳐 후르바쵸프까지 이어지는 그 시절에 이런 반체제적인 소설을 적었다는 것만 보아도 일상을 뛰어 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탈리아어로 이탈리아에서 1957년 번역되어 출판된 이 책으로 1958년 노벨상를 받게 되고 이것은 아마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그 속에서 머무르는 저자를 1960년 죽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듯 합니다. 무릇 지식인은 그럴 수 있는 이들입니다. 지바고가 그것을 알려줍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 E.H.Carr의 ‘러시아 혁명’ 등을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 학교공부의 좀스러움을 한탄합니다. 소설 한권 읽으면서 공부의 폭이 넓어집니다. 볼세비끼의 1917년 10월 혁명이 있기 전, 1905년의 쁘레스냐 봉기와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에의 참전은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짜르로 통칭되는 러시아 전제정의 무능과 능력에도 맞지 않는 세계 대전 참전은 스스로 기름을 붓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형국입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혁명을 시발로 19세기 초에 이르러 서구 유럽의 체제가 혁명과 함께 바뀌고 19세기 초 산업혁명이 성공적으로 도입되어 산업화에 이르는 주요 유럽국가에는 뒤쳐져 있던, 그러나 많은 지식인들이 혁명과 산업의 성공을 보고 배워 농촌사회 곳곳에, 군인들의 생각 틈틈이, 페테르브르끄와 모스끄바의 일부 공업화에 성공한 도시의 노동자 개개인에게 스며들어가 있던 혁명의 불꽃들은 짜르라는 전제 정치의 폭력과 억압을 바꾸고 싶어 하는 데, 그 도화선에 짜르 스스로 불을 붙이는 겁니다.

 

이전 우리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분노의 포도’, ‘중국의 붉은별’, ‘닥터 지바고’는 1920년대를 관통하는 동일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산업혁명 이전 봉건체제를 벗어나면서 새롭게 성장한 자본가와 소시민들의 이야기 인 것입니다. 시간되시면 함께 읽으시길 권합니다.

 

다시 책이야기로 돌아와서, 지바고의 상대역인 라라는 운명을 거부하고자 총을 쏘고, 용감하게 그 운명에 맞서기도 하고, 자기의 사랑을 찾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가혹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편을 잃고 딸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나보내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총을 쏘아 죽여버리려 한 첫 남자가 다시 그녀를 그 이전의 상태로 데리고 갑니다. 간혹, 우리는 이 운명이라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가? 운명이라는 것은 있는가? 물어봅니다만, 아마도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닥치더라도 이보다 더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 운명의 굴레에 씌여져 있는 삶,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PS. 이 책은 다시 한번 읽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읽을때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