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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울산톺아보기> 울산, 도시 공간구조의 기틀 확립(1970년대)

세번째 시간입니다.

 

울산이라는 도시를 연구해주신 분들의 노고가 있어 이렇게 쉽게 옛사진도 보고 이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어디서 살고 계셨을까? 되물으며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딴 자료들도 좋지만, 이렇게 사진 한장 놓고 보는 것도 아주 재미가 있네요. 여러분도 한번 사진에 빠져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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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발전연구원부설 울산학연구센터에서 2012년 12월 발간한 울산학연구 제7호 중 울산대 김헌규 교수님의 글을 발췌 수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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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에 들어 지금껏 남구지역의 장생포 및 여천지구에 집중되어 오던 각종 개발의 움직임이 염포, 미포지구의 개발로 인해 동구 지역에서도 진행되었다는데요. 이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도로 정비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1970년 진장동과 염포동을 연결하는 진입도로가 축조되고, 이듬해인 1971년 염포-남목간 도로가 확장되었네요. 1973년에는 미포단지 진입도로가 포장 완공되어 미포동, 일산동, 전하동 사이의 도로 정비가 이루어지는데요.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민들의 거주를 위한 토지 구획정리 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기술을 가지지 못했던 조선업의 특성 탓인지 시가지 형성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이루어진 개발은 외국인 사택으로 1972년 건설되었어요. 이후 78년에 사원들을 위한 현대 중공업 아파트가 건설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 어항이 들어서면서 시가지가 형성된 방어진항 지역이 도로 개설 등에서 소외되어 앞장에서 소개했듯이 중심지역과는 떨어져 있고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이때즘에야 다소나마 연결되게 되는 거죠.

  이외에 남구의 신시가지 지역에서는 60년대 개발된 월봉지구에 이어 봉월, 달신 1,2, 달동지구가 개발되면서 이곳에 사택들도 들어서는 등의 개발이 진행됩니다. 또한 강북 지역에서도 우정지구와 옥교/ 학산지구, 학성지구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됩니다. 

 

<태화교가 완공(1966년) 되기 이전의 우정동 지역>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옥교동에 위치하고 있던 울산시청이 1970년 1월1일 신시가지인 신정동으로 이전하여 업무를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중요한 도시기능의 하나인 행정기능의 중심이 500여년을 이어오던 기존 시가지에서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울산읍치의 행정기능은 동헌 등이 위치하고 있던 북정동 지역이 중심이었는데요. 이후 행정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옥교동으로 이전되기는 하였지만 공간적으로 매우 밀접해서 1970년대의 시청 이전은 공간과 사람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는 계기였지요.

 

 

<건설 당시 울산시청(준공,1969년12월31일)의 주변>

 

  위 그림에서도 확인되듯이 그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도시의 중심기능이 옮겨간 것인데요.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 울산시민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과는 태화강으로 인해 단절되어 있던 곳이었죠. 시민들의 생활중심 즉 주요 도시 기능으로서의 경제 및 교육기능은 여전히 기존 시가지에 그 중심을 두고 행정기능만이 신시가지로 옮겨가게 된 것인데요. 비록 태화교와 울산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도시 계획적 측면에서 이 일대를 새로운 시가지로 육성해 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인간의 생활패턴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과 또한 행정 이외의 도심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여전히 남겨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시시스템적 측면에서 도시기능이 분산되어 도시가 가지는 중심성을 약화시키는 이전이었다는군요.

 

<우정 구획지구 옆 시외버스 터미널 위치>

 

   비슷한 시기인 1971년에는 당시의 교통시스템의 주요 결절점에 해당하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성남동에서 우정동으로 이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위 그림의 우정지구 바로 서쪽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설치되어 약 30여년간 울산의 교통 결절점으로 기능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도시간 교통의 결절점인 고속버스 터미널은 강 건너 남쪽 신정동에 위치했지요.

  버스 이외에 중요한 교통 결절점에 해당하는 철도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이전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앞서 1960년대에 이미 기존 철도노선의 변경 등이 검토되어 왔는데요, 실제로 신시가지의 배치 등은 철도노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것이죠. 하지만 당시의 노선과는 다른 방향으로 노선 변경이 고려되기 시작하는데요. 1970년 도시재정비계획에서 철도를 주거지역과 공업지역을 차단하는 대상녹지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 철도노선 이전의 주요 고려사항은 바로 효율적인 공업수송에 있어서, 이를 위해 덕하~병영 구간의 노선 방향을 공업지역에 면하여 직선적으로 이설하는 계획이 제안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로체계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1976년 도시재정비계획에서 교통계획을 통해 장래의 도시 활동에 대처함과 동시에 시민의 안전성, 쾌적성을 확보하기 위한 4개 기본방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 대량수송기관 중심의 교통체계 확립, ②생활도로, 지구도로, 지역간선도로 등 도로의 성격에 상응한 사용구분과 교통정비, ③ 다핵적 도시형태의 유도 등의 실현으로 도심교통 혼잡 완화와 효율적 물사수송의 확보, ④기간 교통시설에 대하여 도시 내 교통체계와의 유기적 연계 계획 마련이 그 방침입니다.

  이상과 같은 교통 결절점의 새로운 입지선정 및 철도노선의 변경계획 등이 기존 시가지 및 신시가지와의 전체적 배치가 철도노선 조정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시기 진행된 각종 도시 시설들의 재배치는 결과적으로 도시의 주요 기능들인 상업, 행정, 교통기능 등을 각각 분산시켜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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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좀 짧네요.. 울산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살아가는 터전? 자라온 추억의 장소? 함께 살아갈 우리의 고향? 

  이도시의 과거를 한번 뒤돌아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 속에 있던 이 도시에 대한 감정도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은 80년대 이후 시가지의 확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