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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책은 도끼다.

2013년 3월에 인상깊은 KBS 라디오의 경제세미나가 있었는데요. 이 자료를 올리려 하고 있는데,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책이 나와 있는거예요.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틀었어요. 이 책을 한번 블로그에 올려보기로..

저자는 책 읽기는 파도타기와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잘하면 아주 재미있지만, 잘못하면 물만 먹고 말기 때문이랍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면서 준비운동을 제대로 하면, 대부분 파도 위에서 물살을 즐기게 된다고 설명해주네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의 연속인데요.

처음은 판화가 이철수의 책입니다. 판화가 이철수의 다른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고 하는데, 위의 그림은 울산 인근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소재로 한 글과 판화작품이예요. 그리고 며칠전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찾은 사진.. 글에서도 나오듯이 내가 석탑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석탑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느낀답니다.

또 다른 이철수의 시

성이 난 채 길을 걷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

- <길에서> 전문

저자의 말 "화가 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아주 추운 날 작은 풀잎들이 바람 맞으면서 견디고 있는걸 본 겁니다. 그 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추위와 바람이 얼마나 야속하겠어요. 그런데 화를 안 내잖아요. 그냥 견디잖아요. 그걸 보고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화를 내서 뭘 하겠어' 생각을 했다는 거죠. 이게 좋아요. 이런 것들이 좋아요. 저도 요즘 인터뷰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냥 "견딘다"라고 답합니다. 어쩌겠어요. 사람들은 갈수록 이기적이 되어가는데 이런 글을 통해서 이렇게 동식물에게 배우는 거죠."

비교되는 문장들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비도 있는데요.

최인훈의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보고 만질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저는 이게 글의 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랑이 먼저라는 이야기인데요. 사랑이 먼저 존재했는데 이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서 사람의 몸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정말 아름다운 시선 아닙니까? 지금 말씀 드린 것들은 '광장' 속의 단 몇 구절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글을 소개합니다.

김훈의 글이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다 부속기관이다."

저자는 "영적인 사랑이 있어서 몸이 만들어졌다는 최인훈의 이야기와 전혀 상반되는 것이지만 이것도 맞는 말인 겁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먹고사는 게 다예요. 태어났으니까 살려고 애쓰는 거죠. 그렇다면 기본적인 게 입과 항문이라는 겁니다. 숨을 쉬어야 하니까 폐가 생기고, 뭔가를 잡아먹으려고 하니까 손과 발이 생긴 거고, 동물들에게 힘으로는 못 이기니까 머리가 커진 것이고, 종족번식을 해야 하니까 섹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게 된 거죠. 그러니 입과 항문은 근간이라는 겁니다. 이 한마디는 똑같은 우리를 완전히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최인훈의 문장을 읽고 김훈의 문장을 읽으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있다가 갑자기 지하 20층까지 떨어지는 것 같아요. 현기증 나는 경험을 최인훈과 김훈을 통해 하는 겁니다."

저자는 이 첫장에서 왜 우리는 모두 창의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답을 이렇게 해요. "삶의 맥락에서 볼 때, 저의 대답은 창의적이 되면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풍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해볼까요? 풍요로운 삶이라 하면 대부분 성공한 삶을 떠올려요. 그럼 성공한 삶이 무엇이냐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한번 해봅시다. 성공한 삶이라는 게 뭘까요? 일단 당장 성공한 삶이라면 외제차, 좋은 집, 돈이 떠오르겠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세요. 돈만 많은 사람과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의 표정을 떠올려보세요. 진짜 어떤 것이 풍요입니까?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삶이 풍요로운 삶일까요? 그가 죽을 때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만족할까요? 햇살과 나뭇잎의 아름다움 하나 보지 못해도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만 있으면 행복한 삶일까요? 행복은 순간에 있습니다. 중국의 옛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 작자미상

봄을 찾아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 정작 봄이 집 매화나무 가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 '봄'을 '행복'으로 바꿔서 읽어보세요. 모두 멀리 보고 행복을 찾는데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저는 위 문장을 읽으며 삶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여러 비슷한 말들이 막 들려옵니다. 며칠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어령 전 장관의 말씀이 두고두고 메아리 쳐집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물고기를 잡았을때처럼 파닥파닥거리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해야한다." 결국 같은 말이잖아요.

첫장부터 예사롭지 않답니다. 책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방향제시와 좋은 글 소개는 글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었답니다.

지금,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있는데요, 박웅현은 광고쟁이로서 자기가 소개하는 책들이 읽고싶게 만들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특히나 '자전거 여행'을 주문하려고 보니 현재는 절판이라, 행정자료실에서 빌려서 읽고 있는 중이예요.

김훈에 대한 소개인데요. "김훈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그때부터 필명을 날리며 유명했는데, 이후 마흔일곱에 등단해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타면서 대중들에게 더 친근한 이름이 되었고, '칼의 노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읽었다고 해서 많은 관심을 받으며 김훈의 대표작이 되었는데, 그전에 책 좀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알려진 것이 '자전거 여행'이었다. 이 책은 1999년부터 이 년간 전국 산천을 '풍륜風輪'이라 이름 지은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여행 에세이이다."

저자는 이 책을 천천히 읽을수 밖에 없었다고 밝히는데, 매 문장 빛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는 글들이라 그렇다고 말 합니다.

저도 요즘 저자따라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김훈의 특징은 사실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거라고 말합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화장'을 보면 주인공의 아내가 죽어가는 장면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그것을 위해 종합병원 영안실에서 시체가 나가는 모습을 참관했다고 합니다. '개'라는 소설은 저자의 표현을 빌면 "정말 개가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라고 했는데요, 그렇게 김훈작가에게 말했더니, 웃으면서 진도의 진돗개 사육하는 곳에서 석 달을 머물렀다고 했답니다. 놀랍죠.. 그냥 글이 나온게 아닌거죠.

저번주까지 시청마당엔 매화, 동백, 목련, 산수유, 벚꽃 들이 피었다 지고 또 딴나무에는 피어나고 하면서 꽃들의 잔치가 벌어졌는데요.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꽃들을 봤답니다. 이 책의 소개를 통해서요.. 그 문장들 몇 구절 소개해드리께요.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은 등불 켜듯이 피어난다. (...) 목련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서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올 봄은 이런 꽃들을 볼 때 그 순간순간이 행복했답니다.

책 한 권이 나를 바꾸는구나.. 하면서요.

나머지 좋은 글들도 많이 소개했지만, 이만 줄입니다. 실제 책 한번 보시는게 답입니다. 라디오에서 듣던 박웅현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책을 찾아 다시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