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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제목: 이방인

독서모임 인문학의바다, 이성태

‘뫼르소’적 인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충실하려는 者.
그를 드러내기 위해,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은 첫 장면부터 시작해서 재판을 받는 내내 그의 시야를 잡는다. 햇빛 때문에 그는 살해한다. 살해 현장은 눈을 감아버린 그 어지러운 환상의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재판 中, 자신의 변호에 가장 중요할 때 그는 재판정을 가득 메운 빛에 어지러워진다.
지중해의 햇살은 따가운 열기로서 만이 아니라 눈부신 어지러움이다. 날 좋은 그곳의 풍광은 하얀색 건물들로 눈부시다. 지중해의 파란 물결과 그 하얀 어지러움은 그의 성격을 만든다.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단순해 보이는 그것은 어쩌면, 단순하지 않다고 속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평면적인 인간, 단순화되어 단지, 필요 없는 말들은 사라져 있는 그. 어머니와 대화할 내용이 더 이상 없어서 요양원에 보냈다고 하는 살리마르 영감의 재판정에서의 진술은 어쩌면 그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엔 남자친구가 있었고, 절친한 노파가 생겨 있었다. 뫼르소는 어쩌면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이란 것을 안 듯하다.
어머니의 죽음은 인간 원형의 슬픔이다. 서술은 평면적이었지만, 그가 그 슬픔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인간이었을까? 의심해 본다. 재판정의 판사와 배심원과 검사와 변호사까지도 …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그는 깊은 인간의 원천적 슬픔을 견디어낸 아니, 그 슬픔에 젖어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아마도, 그는 슬펐을 것이다. 그 슬픔을 그는 그렇게 파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 하고, 여인을 만나고 섹스를 하면서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독배가 자신의 삶을 부정할 수 없는 필연적 선택이었다면 뫼르소의 경우는 선택이라기 보다는 눈부신 햇살과 어지러운 정신의 결과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감옥에서 하루 하루를 기다리고 그 하루를 넘기고, 또 다른 하루에 직면하는 모습은 우리네 인간사의 비애가 배어있다.

VER.2 이방인을 다시 읽으며

나는 그를 오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내성적으로 보이고, 말도 많지 않다. 이것은 좋은 습관이다. 모름지기 말이 많아서 좋을 것은 없다. 게다가, 속에 품고 있는 내용 모두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고 옳은 것은 아니니, 할 말 못하고 사는 것도 좋다.
그가 어지러움증에 힘들어 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내가 들여다 보고 있는 현재다. 이전의 그, 또는 행동들은 아무것도 거기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재판정에서 친구들의 증언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성실했고, 나쁜 짓 할 이가 아니라고.
어지러움증은 분명 그 시초가 분명히 나오지 않는다. 단지, 여기서는 어머니의 죽음이 이유가 되었던 것은 알수 있다. 우왕좌왕, 정신없이 행동하는 그의 행태가… 이제야 보인다. 두 번째 읽다보니 내가 가진 그에 대한 선입관이었음을.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라, 이사람 저사람의 말들에 휘둘렸나 보다.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들에 조금씩 다른 이의 독서 감상문도 참고하여서 만들어 갔던 첫 독후감은 나의 오해와 타인의 시선을 곁들인 愚文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본대로, 눈 앞에 빨간색, 파란색 안경을 벗고 흰 벽을 보아야 한다. 빨간 벽이, 파란 벽이 사라진다. 그냥 흰 벽이었다. 오늘 다시 그것을 되뇌이게 되어 다행이다. 엄마가 죽었다. 그것은 나의 정신을 어지럽히는데 충분한 것이다.
그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주검이 안장된 곳으로 갈 때, 그것을 막고 원장에게 가게 되어 여러 행정적이고 체면치례의 것들을 겪고 다시 왔을 때, 어머니의 관은 뚜껑이 닫혀 있었다. 나무 못도 뺄 수 있을 정도로 박아져 있었다. 단지, 못까지 빼면서 뚜껑을 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수위는 당연히 들여다 볼 줄 알았겠지만.
수위는 그에게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라고 한다. 그는 가지 않는다. 수위의 친절은, 그에게 카페오레를 주어 허기를 달래려 한다. 그는 어머니의 주검이 있는 그 방에서 그것을 마신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뫼르소는 세심하고 친절한 남자다.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어머니의 간병인을 대면서 함께 살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힘든 일이다. 요즈음 나도 아버지의 병환으로 간병인을 들이려 해보니 하루 비용이 엄청나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인 것이다. 그는 일반 직장인이고 어머니와 일부러 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정신을 놓고 말도 없었으니…
좋은 소설은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읽는 나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고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한다. 두 번쯤은 읽어줘야겠다. 다시 읽기는 새롭게 다가왔다. 새롭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깨닫는다. 매일 깨어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