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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8) - 여민이란 무엇인가(2-2)

 

 

오랜만에 다른책을 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새롭게 읽힌다.

 

글을 읽는 것에도 여유가 있어야겠다.

 

그렇게 질타를 하던 위민과 민본을 뒤로하고 드디어 핵심으로 다가간다. 여민(輿民)이다.

 

다시 한번 읽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이제 우리는 맹자를 읽는데도, "민본이라느니 위민이라는 오도된 말 속에 이미 서양식 렌즈를 통해서만 인식되는" 읽기를 한다는 말이다. 맹자 뿐이 아니다.

 

이 글 서문에 뽑아 놓은 "동양은 우리 자신에 의해 표상되지 않는다"는 어려운 말에도 같은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 시각은 우리것을 그대로 볼 수 없다. 서양의 색안경을 끼고 볼 수 밖에..

 

재미있지 않은가? 서양의 과학기술에 압도당한 동양의 국가들이 서양말로 자신들의 개념을 정리해버린 이 현실이..

 

그리고 이전에 우리가 추구하고 느끼고 하던 글을 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던 감각들이, 이제는 두터운 옷속에 숨어서 속살을 안보여주려는 듯, 숨어 있음을..

 

한겹 한겹 꺼풀을 벗기듯 찾아가는 노고를 하기에는 의지도 박약하고 능력도 안된다. 이렇게 풀어풀어 써주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하나하나 옳은 길인지 두드려보며, 갈 수 밖에...

 

이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개념이라는 것이 통용될 시점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 시절에는 당연히 이 말을 하면 모두 다.. 알아 듣는 .. 그러한 개념.. 지금도 그러한 말들은 있다.

 

위민이니, 민본이니 하는 말이 유교의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도 이 부분을 꽉잡고 있다. 그시절 그때의 말이 아닌것이다.

 

공자는 인(仁)을 말했고, 맹자는 인의(仁義)를 말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가 하지 않은 말을 가지고 논의하는것은 헛다리를 짚을 우려가 다분히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것이다.

 

글속에 에피소드로 농가학파와 하는 논쟁이 나온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맹자'가 참 재미있겠다고 싶다.

 

한번 읽어봐야지..

 

여민은 백성과 함께 더불어 한다는 말인데, 농가학파는 농민들과 함께 농사짓고 일하고 함께 하는 위정자를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여민이라는 의미다.

 

그 논의를 깨는 맹자의 말에서 토론의 진정성을 느끼고 그 당시의 학파들끼리의 논쟁의 일면을 본다. 재미있는 드라마 보는것 같다.

 

위민과 여민의 대립구도속의 조선 유교사상사를 파악해 봐야 한다는 부분도 신선하다. 물론, 그전에는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말하기는 조금 그렇긴 하네..

 

노심자와 노력자가 나오는 부분은 향후 맹자라는 책을 읽을때, 어떠한 해석이 있는지 바라보게 한다. 대부분의 책은 노심자는 지배계급으로 착취자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음과 지혜를 소모하는 정신노동자' 이것이 노심자의 해석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정치가의 역할이 지대함을 알고 나타내는 말이다.

 

또하나, 여민을 말하며, '인민의 주체성'과 '정치의 자율성'을 맹자의 여민체제를 버티는 두 기둥이라고 칭하는데, 앞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